[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 말의 두 모습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3/04/25 11:25

말의 두 모습

말은 늘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아니 귀 옆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다양한 말이 허공을 떠돌기도 하고, 나의 선택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언어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세밀한 차이 때문이고, 잠깐 달리 생각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품격이 있는 말이라고도 하고, 저렴하다고 하고, 속되다고도 하고, 뻐긴다고도 합니다. 말은 의사소통에서 양면, 다면을 갖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너무’라는 말은 부정과 호응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너무’를 긍정적인 표현과 함께 쓰면 틀렸다고 말합니다. 너무 완고한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는넘다와 관련이 있어서 넘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기에 이런 규칙 아닌 규칙이 생겨났을 겁니다. 하지만 넘치는 감정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너무 맛있다’에서 저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너무를 매우로 바꾸면 더 어색할 것 같습니다. 너무와 매우, 아주 등을 보면서 그 차이가 감정의 차이가 됨을 느낍니다.  

강렬한 표현은 강렬한 감정을 보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좋다는 표현을 할 때 ‘와, 미쳤다!’라고 합니다. 강렬하지요. 물론 전에도 ‘죽인다’라는 표현이 아주 좋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죽인다는 표현 못지않게 죽겠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사실은 무서운 말이지만 삶 속에서는 ‘죽다’만큼 센 표현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가고 싶어 죽겠다, 보고 싶어 죽겠다처럼 죽으면 할 수 없는 일에도 사용을 합니다. 살고 싶어 죽겠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역설적이지요.

친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친구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의외로 친구는 비하의 장면에 주로 쓰입니다. 이 친구, 저 친구라는 말에서 종종 기분이 나빠집니다. 친구는 친구에게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의 다른 말인 동무라는 말을 아무 데나 써서 진짜 동무가 사라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과 지역이라는 약간 다른 단어로 썼을 뿐인데, 차별적인 느낌이 듭니다. 사실 표준어와 비표준어라는 말도 차별어인 셈입니다. 사투리나 방언은 지방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서울사투리, 서울 방언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자꾸 서울과 기타 지역을 구별하려고 합니다. 지방대학과 지역대학은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지방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지방을 지역이라고 부르는 일에서 시작하여야 합니다.

아범과 아비, 아버지와 아버님도 다 다른 말입니다. 정확히 구별하여 쓰고자 하면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쓰는 사람도 적고, 그것마저도 어떤 것을 정확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참 빠릅니다. 요즘에는 아범과 아비, 애비는 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말과 쉬운 말이 앞에 있을 때는 가능한 한 쉬운 말을 쓰기 바랍니다. 말의 목적은 소통에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어려운 말을 쓰기 원하는 경우라면 할 수 없이 어려운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쉬운 표현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유감입니다’보다는 ‘미안합니다’가 훨씬 좋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표현을 할 때는 조금 더 명료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보다는 ‘미안합니다’가 낫다는 의미입니다.

말이 내 앞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즐거운 고민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을 더 살맛 나게 해주세요. 내가 사용하는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됩니다. 언어가 곧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